디자이너와 사업가는 결국 같은 일을 한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경영자는 서로 다른 기준과 시야를 가진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비즈니스를 설계하고, 사업가는 디자인을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은 감각만으로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수치만으로 비즈니스를 판단하는 사업가에게 디자인과 비즈니스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보여주고자 한다.
시야로 판단하는 동물, 인간.
Li, H., Xu, J., Fang, M., Tang, L., & Pan, Y. (2023). A study and analysi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visual–auditory logos and consumer behavior. Behavioral Sciences, 13(7), 613. https://doi.org/10.3390/bs13070613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시각을 통해 87% 의 정보를 청각을 통해 11%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수치라기보다는, 인간의 감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 모델에 가깝다. 정확한 출처를 추적해보았으나. 아쉽게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87%의 수치나 이론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본능적 그리고 경험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정보습득 방법이 시각인 것을 안다.
예컨데 갓난아이는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부모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통해 감정을 읽고 상황을 이해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유아기에도, 눈이 닿는 곳의 색, 움직임, 빛을 따라 반응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메뉴판에서 음식 이름만 나열된 경우보다, 음식 사진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훨씬 빠르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심지어 대화 중에도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표정, 제스처, 옷차림, 눈빛과 같은 시각 정보를 통해 분위기를 파악한다.
이처럼 시각은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가장 본질적인 감각이다. 그러한 이유로 시각적 언어인 디자인은 비즈니스 시장에서 강력하게 작동할 수 밖에 없다.
산업혁명과 디자인의 부상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 비즈니스 시장은 대량생산과 기계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시기에 디자인이 어떻게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비즈니스 시장의 강력한 언어가 되었는지 살펴보자.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계화와 공장제 생산 방식의 도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소비자들은 몇몇 장인들이 만든 비싼 제품, 혹은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질이 나쁜 제품 대신 표준화된 저렴하고 쓸만한 공산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량생산이 일반화되면서 제품 간의 차별성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동일한 외형과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시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 소비자들은 '모두가 똑같다'는 감각에 피로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업들이 먼저 이 문제를 인식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선 단순히 저렴하고 효율적인 제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기업들은 시장 내에서의 차별화를 위해 '디자인'을 전략적 도구로 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일한 공산품이라도 포장지와 시각적 요소를 통해 브랜드를 구분 짓는 브랜딩 전략이 시작되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자와 제품 간의 첫 상호작용 지점을 설계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후 기업들은 시장 내 타깃 소비자의 세분화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에 기능적 차별성과 형태적 다양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확산된 여성 전용 자전거 프레임 설계와 같은 사례는 시장 타겟팅에 따라 외형적, 기능적 디자인이 차별화된 대표적 예시이다.
디자인 경영의 등장과 체계화
인간이 본능적으로 시각 정보에 가장 많이 의지하는 만큼, 디자인이 비즈니스의 중심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산업혁명 시기 디자인의 중요성을 빠르게 인지한 이들은 20세기 중반 독일,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디자인과 경영의 통합을 시도했고, 이는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되었다.
디자인 경영은 비즈니스 시장에서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적립하였다. 여기서 디자인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 사용할 것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냐, 어떤 브랜드와 경험으로 다가갈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설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끝에 소비자가 보는 ‘시각적 결과물’ 이 완성되는 것다. 다시 말해, 디자인은 단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전달할 '가치'를 눈으로 설득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전략이 되는가?
이 쯤에서 다시 한번 , 소비자의 중요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경영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경영의 실제』(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사업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이다. 왜냐하면 고객이, 그리고 오직 고객만이 어떤 재화 또는 어떤 서비스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할 의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만이 경제적 자원을 부로 전환하고, 재료를 재화로 전환하도록 만든다. 고객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구입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즉 고객이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즉, 고객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곧 제품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단순한 기능이나 가격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정체성과 취향에 깊이 닿는 무언가,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 핵심이 바로 본 글에서 이야기 하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대중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미적인 영역에만 해당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면 시각적 미를 떠올리지만, 실제 소비자들은 훨씬 더 복합적인 기준으로 판단한다. 제품의 편리성, 스토리, 실용성, 취향과의 일치 여부까지. 70억 인류가 있다면 70억 개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만족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미적 기준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철학, 스토리, 디자인에 대한 일관된 고집과 태도.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구성하며, 그 아름다움이 곧 브랜드의 경쟁력이 된다.
그 경쟁력은 단지 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정체성이고, 정체성은 신뢰다. 일관된 미감과 철학이 반복될 때 소비자는 브랜드를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기업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제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떤 감각과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가? 명확한 고객 페르소나를 설계하고, 그에 맞는 언어와 디자인, 경험을 구성하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 디자인 경영은 출발한다.
즉, 고객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곧 제품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기능이나 가격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정체성과 취향에 깊이 닿는 무언가—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 핵심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실무에서 활용되는 디자인 경영의 관점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실무에서 디자인 경영을 어떻게 도입해야 할까?
정체성을 세우는 도구: 페르소나(Persona)
디자인 경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페르소나(Persona)'다. 특히 제품이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할 때, 가상의 페르소나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된다.
가상의 페르소나는 단순히 '가상의 고객'이 아니다. 그는 제품을 사용하는 한 명의 대표자이자, 우리가 설계하는 감각과 언어, 기능과 스토리를 투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다. 이 인물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가치에 반응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제품과 브랜드는 단지 기능적 완성도를 넘어서 정체성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30대 중반의 도시 여성,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며,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제품의 기능뿐 아니라, 그 감성을 어떤 톤앤매너로 전달할지, 어떤 패키지로 감쌀지, 어떤 경험으로 기억에 남게 만들지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우리가 창조하는 모든 디자인과 전략의 중심에 서게 된다.
페르소나를 명확히 설정하는 일은 결국 기업이 누구와 대화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일이며, 이는 곧 제품의 세계관과 철학을 드러내는 강력한 방법이 된다. 특히나 과잉 공급의 시대에, 누군가의 마음에 정확히 닿는 제품과 메시지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 페르소나를 빼놓고는 시작할 수 없다.
디자이너의 디자인 경영
디자이너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물론 시각적 배치, 색, 구도 등을 통해 조화를 이뤄내는 작업은 창의성과 안목이 요구되는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태도 그 깊이 있는 고민이야말로 디자인의 퀄리티를 결정짓는다. 이처럼 '아름다움 너머'를 고민하는 디자이너는, 결국 이야기를 설계하고 경험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업가의 디자인 경영
반대로 사업가는 숫자와 시장 논리를 넘어, 아름다움의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단지 미적인 만족이 아니라, 소비자를 어떻게 감동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동은 신뢰로 이어지며, 결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만든다. 사업가는 제품이 '얼마나 팔리는지 데이터'만 보고 있는게 아니라 데이터 너머에 '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가치를 느끼는 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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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판매를 고민하고, 사업가는 아름다움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 교차점에서 진정한 디자인 경영이 시작된다.
디자인 경영: 철학과 태도의 전략
디자인 경영은 '잘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 '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디자인은 형태 이전에 태도이고, 경영은 숫자 이전에 철학이다. 고객의 감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시각적 요소를 고민하지만, 그 너머에는 철저히 인간적인 이해가 존재해야 한다.
디자인 경영은 그 이해를 전략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단지 눈길을 끄는 것을 넘어,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 그 시작은 ‘누구를 위한가’라는 질문이며, 그 끝은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디자이너와 사업가 모두, 오늘보다 더 정제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태도와 미적 기준, 철학을 구축해 나갈 때 우리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브랜드를 만들고,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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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치며, 이 글이 디자이너와 사업가가 함께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접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