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아이맥과 아이폰을 처음 손에 쥔 이후, 나의 디지털 세계는 애플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맥북,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에 이르기까지, 소위 '앱등이'라 불릴 만큼 애플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운영체제(OS)가 선사하는 압도적인 직관성과 사용자 경험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넘어, 디지털 기기 선택의 기준이 하드웨어 사양에서 소프트웨어 생태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OS 기반의 사용자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운영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용자의 일상과 업무, 창작 활동 전반을 관장하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중추 신경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현재 모바일 OS 시장은 안드로이드가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비싸기만 한 애플을 왜 쓰냐"는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 인식일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도 이러한 구도가 지속될까? 2023년 12월 기준, 18~24세 연령대에서 아이폰 사용률은 약 44%로, 안드로이드의 30%를 이미 앞질렀다. (출처: Netguru) 이는 아이폰 OS의 강력한 사용자 Lock-in 효과가 OS 생태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OS: 단순한 운영체제를 넘어, 디지털 제국의 초석
운영체제(OS)는 컴퓨터, 모바일 기기, 로봇 등 다양한 디지털 장치의 하드웨어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자와 기기 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다. 2024년 기준 글로벌 OS 시장은 구글(Android 45.68%), 애플(iOS, macOS 17.84%), 마이크로소프트(Windows 25.75%)가 확고한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 기업들은 자체 OS 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를 넘어선다. 성공적인 OS는 막대한 초기 개발 비용과 시간, 지속적인 유지보수, 그리고 방대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구축을 필요로 한다. 또한, 수많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 콘텐츠 제공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인, 사실상 국가 수준의 인프라 구축 사업에 가깝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기업들의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와 견고한 생태계는 신규 진입자에게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전통적으로 하드웨어 제조 중심의 성공 전략에 집중해 온 한국 산업의 특성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생태계 설계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OS를 놓친다는 것은 앞으로 생성될 모든 제품들을 놓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AI의 발전에 따른 앞으로의 미래 전망에 있다.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현실 공간, 특히 로봇 산업과 사물인터넷(IoT) 전반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로봇은 더 이상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다. 자율주행, 환경 인식, 음성 및 표정 분석, 복잡한 상황 판단 등 인간처럼 사고하고 반응하는 '지능형 에이전트(Intelligent Agent)'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지능형 기기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그 중심에는 바로 OS가 있다.
이제 OS는 각기 다른 기기들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엮고, 데이터를 원활하게 순환시키며, 인간과 기계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지능의 허브(Intelligence Hub)' 역할을 수행한다. 더 나아가, 이 OS가 어떤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 창조되고, 사용자의 습관과 문화가 바뀌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생활 방식까지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인프라를 넘어선 디지털 생태계의 뼈대이며, 이 뼈대를 누가 설계하고 주도하느냐가 미래 산업의 패권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OS개발의 어려움, 어렵기에 가야할 길
물론, 새로운 OS를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타이젠(Tizen) OS는 자체 운영체제를 확보하려는 중요한 시도였으나, 앱 생태계의 절대적인 부족, 핵심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 문제,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와의 유기적인 연결 부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OS 개발이 단순한 기술 구현의 문제를 넘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생태계 조성 전략과 글로벌 차원의 개발자 협력 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함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고 차세대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OS 개발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다. 타이젠의 경험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위한 값진 학습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AI 시대의 도래는 모든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OS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2024년 7월 한국경제에 따르면 삼성도 타이젠 OS의 TV OS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초연결’ 모델을 기반으로 주도권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알렸다. 타이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며 새로운 타이젠OS는 사람을 위한 HIG가이드라인, 디자인 시스템을 기대한다.
디자인 시스템, CI: 사용자 경험 설계, 보이지 않는 국가 경쟁력
디지털 기기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간 중심의 깊이 있는 탐구, 즉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애플은 제록스 PARC 연구소에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기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였으며, 이후 'Human Interface Guidelines(HIG)'를 발표하며 HCI 원칙을 제품 설계에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오늘날까지도 애플은 자사의 확고한 HCI 철학을 바탕으로 UI/UX 디자인의 표준을 제시하며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들 중에서 애플과 같이 체계적인 HIG가이드라인을 명문화하고 이를 기업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여전히 많은 기업이 하드웨어의 기술적 사양 우위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사용자 경험 설계의 중요성에 대한 전략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해 온 HCI 철학과 디자인 언어를 이제 막 따라가려는 현시점에서, 국내 산업계는 인간 중심 설계(Human-Centered Design)의 근본적인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내재화해야 한다.
UI/UX 디자이너의 역할 또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AI 및 ICT 환경 속에서, 디자이너는 단순히 보기 좋은 화면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시스템과 인간 사용자 사이의 감성적·인지적 경험 전반을 총체적으로 설계하고 조율하는 '디지털 경험 전략가(Digital Experience Strategist)'로서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작성자
안녕하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자이너 정수영입니다. 디자인과 디자인 경영, 인터넷 IT기술에 대한 통찰과 학습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디자인과 경영, UI/UX, Figma, Framer, No Code Web Builder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글에 대한 피드백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이나 아래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